홍해와 요단강 (The River and the Sea)

dimitrisvetsikas1969/pixabay.com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의심없이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걸은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기적의 본질은 순수하고 경이롭습니다. 이집트에 임한 열 가지의 재앙 이후, 이집트에서 모세와 함께 해방된 이스라엘 인구는 약 150만에서 300만명 사이로 추정됩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이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열 가지의 재앙으로 바로의 손발이 묶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치고 싶다고 느낄 만큼 감동적입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기에 더욱 은혜롭습니다.

 

성경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출애굽기를 읽으면, 이집트에게 내린 이 끔찍한 저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어려운 문제들에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는 교만하고 독재를 일삼았으며, 쉽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4장4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를 통해 영광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바로는 열 가지의 재앙이 임할 때까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 손에 땀을 쥔 채로 긴장하며, 홍해에 도착할 것입니다. 바로의 손에서 벗어난 영광스러운 해방의 길을 가던 중, 홍해를 맞닥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이 캄캄해졌을 것입니다. 또다른 학살의 위기가 그들 앞에 펼쳐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야기의 결말은 빠르게 진행됩니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라는 장애물 앞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잡았을 때, 그 군대의 함성과 병거 소리는 천둥과 같이 울렸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절5-9장).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애굽기 14장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태어난 아이들 중 아들은 나일강에 던져야 했던 과거의 일(출애굽기 1장22절)이 오히려 가볍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본다면,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죽임을 당하고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다시 바로의 노예가 되어 힘들게 살다가 죽어갈 것이라고 예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빠르게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걸어가는 동안, 추격하던 바로와 그의 군대는 물에 뒤덮여 멸망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애굽기 14장30-31절).

홍해에 다시한번 서다

홍해의 기적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창12:2-3:15), 이삭(창17:19-21), 야곱(창28:3-4, 13-15)에게 하신 그분의 영원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입니다. 성경에는 홍해의 기적과 비슷한 수중횡단 사건이 또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인데,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활한 바다가 갑자기 갈라져 물이 공중으로 높이 솟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물벽이 생긴 홍해의 기적과 비교해볼 때, 요단강 사건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쉬운 일처럼 보입니다.

요단강 사건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간과되는 이유는 간단히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강’이라는 단어와 ‘바다’라는 단어의 어감에서 비롯되는 차이입니다. 강이라고 하면 바다와 달리 상대적으로 좁고 구불구불하며 인간이 극복할 수 있겠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바다는 너무도 깊고 넓기에 인간이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로서 이미지를 가집니다. 두번째로는 현재 요단강의 상태입니다. 언뜻 보면 현재의 요단강 은 힘차게 뛰면 쉽게 건널 수 있을 것같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강을 건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며 익사의 위험도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학자들은 여호수아 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 가에 도착했을 때, 강물의 깊이가 300피트(100미터) 이상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3장 15절에서 보면 이때는 강물이 범람했던 시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은 극복하기 어려운 큰 장애물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40년이라는 시간동안 광야를 지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리더로 임명된 후,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거의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또다른 장애물이 그들 앞에 놓여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가에서 사흘동안 진을 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3:2). 그리고 관리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지를 기대하며 백성들을 깨우쳤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세 가지 일을 명령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전에 스스로를 성결케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5절). 이때 여호수아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로 제사장들에게 언약의 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6절). 여호수아의 믿음은 여전히 견고했습니다. 셋째,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물에 들어가 요단강에 서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13절).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기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호수아 3:14-17)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에 젖지 않은 마른 땅을 밟으며 요단강을 건너간 것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최근 이스라엘에서 저의 동료이기도 한 기독교 지도자가 저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홍해와 요단강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초자연적이며 하나님이 얼마나 그의 언약을 충실히 다루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확고한 사랑(헤세드, hesed)이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또 다른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7장 5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신 그 모든 일에 특별한 목적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애굽에 일어나기 전,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다시 말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통해 애굽과 이스라엘은 진정한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군대, 제사장, 신전, 피라미드 그리고 신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 심판에 의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는 틀림없이 애굽이 질서와 빛의 문명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혼돈과 야만 그 자체였으며, 그저 얇은 베일로 그 실체가 가려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착취하여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아이들을 학살하고, 가족을 파괴하여 그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심으로 말미암아 경이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참된 질서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애굽과 온 이스라엘에게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애굽인들에게는 피로 변하는 강, 개구리 떼, 이의 공격, 끔찍한 어둠, 장자의 죽음 등은 곧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바로와 애굽의 신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2절, 민수기33장 4절).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질서를 회복하고 혼돈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언약에 대한 충성을 지키셨습니다. (창세기 15장13–14절, 예레미야 31장35–37절). 놀라운 점은, 재앙 이후 많은 애굽인들이 바로와 그들의 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지를 깨닫고 그들의 나라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36절, 38절)

애굽인들이 그의 나라에서 행해진 기적과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처럼, 요단강의 기적도 하나님의 강한 역사하심을 통해 이스라엘이 주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사한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호수아 4장23-24절)
하나님의 능력의 빛이 애굽 땅의 흑암을 꿰뚫었으며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 앞에 떨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능력의 빛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어둠을 뒤로하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혼돈 가운데 있었던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질서와 심판을 경험하게 됩니다(창세기 15장16절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진 홍해를 건너 시내 산에 이르러 언약의 말씀인 토라(창세기-신명기)를 받았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갈라진 요단강을 건너 언약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건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혼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질서와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의 기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언약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성경 전체에서 반복됩니다(창세기 12장3절, 사사기 119장-12절, 사사기19장18-25절, 시편 117편).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때때로 그들이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됩니다. 그분의 언약은 우리에게 그의 변치 않는 성품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시편 105편8-11절, 로마서11장29절). 자유의지를 가지고 한 행동에 대해 결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때때로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영광스러운 뜻을 계획하시며 그분의 길을 걷도록 그들을 부르십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열방이 보게 될 메시아 시대(에스겔 36장22-38절)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이스라엘과 함께 예루살렘에 모여 왕되신 하니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스가랴8장23절, 스가랴 14장1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계시며, 그러므로 우리와 맺은 언약 또한 지키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혼돈을 제거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질서 아래에 두십니다. 거친 물을 나누시어 우리의 발을 마른 땅으로 인도하시며 확실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 결과 보기

Expl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