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 (Behold, the Days Are Coming)

올해도 어김없이 귀한 은혜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유월절이 다가왔습니다. 이 때가 되면 전 세계의 유대인 가정들은 유대교의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인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대청소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봄바람을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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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 유월절을 보내기 위한 대청소는 단순한 관습이 아닌 종교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유월절 기간 동안 모든 유대인 가정에 하메쯔(chametz) 나 누룩이 없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그들은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철저하게 청소하고 누룩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합니다. 유월절 전야가 되면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가장 좋은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먹으며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월절 전야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역사의 흐름을 바꾼 한 사람과 절망적인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토라(Torah, 창세기-신명기)라는 놀라운 선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토라를 소중히 여기고, 따르고, 순종하고, 토라의 말씀대로 살아내어 민족 전체가 하나님을 알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었습니다.

가장 높으신 통치자를 인정하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히브리인들과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애굽은 만물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했고, 수백 명의 거짓 신으로 이루어진 판테온(만신전)을 버리고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항복해야 했습니다. 파라오(바로)의 노예로 400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배우기 위해 애굽과 연결된 모든 것들을 끊어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습성에서 벗어나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엄청난 사건과 배반, 모험과 신비, 순종과 반항, 용서와 자비로 가득 찬 이 이야기는 히브리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애굽의 노예로 암울한 삶을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애굽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눈앞의 어려움 앞에서 이전의 비참한 존재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들은 자유인의 신분으로 구름을 따라 광야를 통과하는 것보다 지푸라기 없이 벽돌을 만들어야 했던 노예의 삶이 더 낫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며 이들은 마침내 변화되고 승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많은 학자들은 40년간의 광야 생활이 애굽에 의존하던 노예의 사고방식을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한 단계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애굽에 대한 불경건한 의존성이 약속의 땅에 함께 유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출애굽 이후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이사야 31:1)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사야 31:3)

에스겔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애굽에 의존하는 것을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었고 결국 선지자를 통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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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에스겔 29:1-3)

이 말씀은 예언이 선포된 당시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자들 중 바벨론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애굽의 도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애굽 왕 파라오에 맞서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권위도 영향력도 없고 가난한 한 남자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왕과 맞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하나님의 대변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애굽 왕 파라오의 권세는 우주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의 권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에스겔과 동시대에 살았던 예레미야 또한 파라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예레미야 44:30)

세상 신의 몰락

하나님께서 파라오를 강 한가운데 누워있는 거대한 괴물이라고 언급하신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애굽에는 나일강과 그 지류에 사는 거대한 괴물이 있는데, 이 괴물이 바로 악어입니다. 실제로 파라오는 종종 사람의 몸과 악어의 머리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파라오는 애굽 전체가 의존하는 강을 매섭게 보호하는 모습 때문에 대 악어(Great Crocodile)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파라오의 오만함은 에스겔서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는 나일강을 ‘나의 강’이라 부르며 자신이 그 강을 직접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라오는 실제로 자신을 신이라고 믿었고,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강인 나일강을 만들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나일강에서 공급된 물을 통해 강 주변에 퇴적된 비옥한 토양은 해마다 많은 결실을 맺는 농경 낙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강이 먼 곳까지 연결되는 수로였기 때문에, 애굽의 농부들은 자신이 수확한 풍성한 농작물을 쉽게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인들은 실제로 나일강을 숭배했고, 파라오를 나일강을 창조한 악어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번역에서는 파라오의 말을 “나의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만들었다”라고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파라오 자신이 강을 창조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여 애굽의 여러 신을 창조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결국 파라오는 “나는 신이다. 나는 만물의 창조자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강하고,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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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예언은 에스겔을 통해 계속됩니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에스겔 29:4-5)

악어를 잡을 때는 턱에 깊숙이 들어가는 매우 큰 갈고리를 사용합니다. 갈고리를 통해 악어를 물에서 마른 땅으로 끌어내고, 물 밖으로 끌어낸 악어는 필요에 따라 풀어주거나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에게 하나님의 갈고리로 악어 왕을 잡으면 들짐승의 먹이로 들에 던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 사회가 매장 의식과 내세를 중시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경고는 참기 힘든 굴욕적인 위협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에스겔의 예언에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애굽을 사람이나 짐승이 통행하지 못할 곳으로 묘사하시고, 그 황폐가 40년 동안 지속되어 애굽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흩어진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다시는 열국 사이에서 초강대국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여러 나라 중 가장 미약한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은 느부갓네살의 약탈 이후 다시는 그처럼 높은 권세와 영향력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한 애굽의 멸망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애굽에 대한 불경건한 의존에서 벗어나 더 이상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애굽을 그들의 구원자로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느부갓네살의 권력 상승을 우연이나 그 가문의 역사적인 권위 때문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애굽에 대한 속박과 의존성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로 애굽의 권력을 이용한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

에스겔서의 전체 내용 중 4개의 장에서 애굽에 대한 예언이 언급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내용도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가장 아름다운 약속 중 하나는 에스겔 28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말미암아 여러 나라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국 땅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주할지라 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에스겔 28:25-26)

Keren Hayesod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애굽 등)을 심판하시며, 동시에 그분의 눈동자(스가랴2:8)라고 부르는 백성들에게 그분의 사랑을 쏟아부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 국가에 투쟁이 끊이지 않고 적들이 계속해서 괴롭힐지라도 이스라엘은 오늘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공급하실 수 있는 안전 속에 거합니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계속해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스라엘은 열방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곧 이방인들 가운데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기억하며, 올해 유월절 식탁에서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야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 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예레미야 16:14-15)

쉐릴 하우어 목사(Rev. Cheryl Hauer)
Bridges for Peace 국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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