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스라엘 편에 서야 하는가? (Why Stand with Israel?)

세계 각지로 다니면서, 나는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크리스천들과 만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Bridges for Peace는 초교파 단체로, 여러 다른 교단의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 강단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종종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의아해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티칭레터에서는 왜 모든 크리스천들이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실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1-3)

아브람(이후 아브라함으로 바뀜)은 다신을 섬기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 중에는 풍요의 신, 비의 신, 불의 신, 전쟁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그에 맞는 신에게 기도하였습니다. 만일 적당한 양의 비가 오면 비의 신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며, 만일 가뭄이 오면 그들이 비의 신을 노하게 만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기도한 사람들의 필요가 얼마나 잘 채워지는지에 따라 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아브람의 어릴 적 가정 환경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가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 사회에서 자랐다는 것은 거의 분명합니다. 아브람에 관한 랍비들의 많은 이야기 중 하나는 그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 그 이야기는 아브람이 이 우상들에 대해 얼마나 환멸을 느끼고, 결국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부분을 다르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셨다고 말입니다. 이어지는 아브람의 행동을 보면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곧장 순종하는 것을 보십시오. 자신의 가족과 고향과 조국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남편과 내가 이스라엘로 올 때 바로 그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람과 달리 우리가 향하는 곳이 최소한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곧장 그의 소유를 꾸려서 아내와 조카 그리고 그들이 모은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실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나의 친구, 나의 벗”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8-10)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야고보서 2:23)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을 부르셨으니까요. 아마 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왜 아브람을 먼 땅으로 옮기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당시 가나안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 땅을 선택하셨을까요? 아브람은 그의 고향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세계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고대 세계의 중심지로 옮기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신을 믿던 세계가 전능하신 창조주, 오직 한 분이신 진정한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것이 그 분의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택하셔서 고대 세계의 한복판에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북쪽 가장 먼 곳에서 최남단 홍해에 있는 에일랏까지는 차로 약 일곱 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은 가장 넓은 곳을 기준으로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땅이 바로 고대 세계에서 대륙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고대 지도에는 종종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당시 세계의 중심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이 있고,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있던 고대 세계에서, 바닷길은 오늘날의 고속도로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군대는 전쟁 시에 이곳을 지나 전쟁터로 행진했고, 무역 상인들은 먼 시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낙타를 타고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성경시대는 항공을 이용하는 오늘날보다 여행 속도가 훨씬 느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차로 7시간이 걸리는 여행은 당시 도보나 낙타로 이동할 시 수일이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을 지나가면서 하나님 한 분 만을 예배하는 이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하심을 들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진정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분 자신과 그 분의 성품을 온 세계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께서 그분을 온 세계에 드러내시기로 선택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들로 유대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유대인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성경 속 사건들과 수천 마일(혹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성경 속에 쓰여진 가치와 원리들에 깊은 영향을 받고, 또한 그들의 사회와 문화 가운데 이러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종종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러브레터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분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표현들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열왕기상 10:9)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시편 98: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시편 135:4)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 3:16-17)

헨리 블랙커비(Henry Blackaby)는 책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Experiencing God)》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찾아내야 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동역하기를 원하시는지 그분께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묵상하는 크리스천들이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약속과 유대인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으로 오신 우리의 구원자

우리가 예슈아(예수님)를 직접 만난다면 우리 중 몇 명이나 놀라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집안이나 교회의 벽에 걸린 예슈아의 그림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분은 유럽인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슈아는 아마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분은 유대인, 셈족(역주: 셈어를 사용하는 아랍인, 유대인)이었고, 어두운 피부색에 어두운 (아마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짙은 색 눈을 가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림속의 예수님은 다소 약해 보이지만, 나는 그분에게 약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슈아는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땅의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높고 낮은 언덕이 많고 여기저기에 돌투성이인 이스라엘의 지형은 쉽게 걸어 다닐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특히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는 걷기가 몹시 힘든 구간입니다. 더구나 그분은 목수였습니다. 성경에서 목수로 번역된 헬라어 ‘텍톤(tekton, τeκτων)’은 건축가나 장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나무보다 돌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예슈아도 돌을 다루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무든 돌이든 두 가지 모두 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나는 예슈아가 연약한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진정한 남성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슈아는 역사상 유일하게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를 선택한 분이셨고, 그분은 유대인이 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예슈아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경건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토라(창세기-신명기)를 지키는 삶을 사셨으며, 기도숄을 두르셨고(역주: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탈릿’이라 부르는 기도숄을 두름), 시나고그와 회당에서 예배 드리셨으며, 유대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교회에 가신 적이 없습니다.

나의 아버지, 데이비드 알렌 루이스(Dr. David Allen Lewis) 박사님은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곤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미워하면서 어떻게 유대인이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이것이 타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가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가정에서도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환영받게 되지요. 자녀를 낳으면 배우자의 부모님은 자녀들의 조부모님이 되고요! 신랑에게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의 가족들에게는 관심 없어요. 자주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라고 말하는 신부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신부가 있다면, 신랑은 신부의 사랑이 의심스러울 것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의 유대인 메시아(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관심사에 관심을 두고, 그분이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기로 결정함이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에 그분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크리스천 중 누구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신약 당시로부터 2000년, 구약 당시로부터 약 3000년이 지난 지금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과 이스라엘은 종종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옛적 이스라엘과 하신 약속들을 성취하심으로 그분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말씀을 지키시는 분임을 세상에 증명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이른 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스겔 36:20-23)

그럼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통해 그분을 드러내시는 일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에스겔 36:8-9, 34-35) 100년 전 만 해도,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팔레스타인(5세기 초부터 1948년까지 이스라엘 땅을 부르던 이름)은 터키의 부주의로 수세기 동안 방치되면서 황량해졌습니다. 그곳을 여행하던 사람들은 성경 속 땅의 실제 모습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아래의 글들은 그들의 증언입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그의 저서 《해외 여행기(Innocents Abroad)》에서, 1800년대의 팔레스타인을 나무가 없는 황량한 땅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그 땅을 “지독히도 벌거벗은 민둥산”이라 불렀고, 마을은 “추하고 비좁고 지저분하고 거북하고 고약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음울하게 만드는 고독함;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과 녹슨 언덕의 불모지는 그 가혹한 모습이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다”고 했고, 특별히 “마치 여섯 개의 장례식 기둥 같은 종려나무 아래 잠들어 있는 디베랴의 지루한 마을들; 돼지떼가 바다로 내달린 기적이 행해진 저기 보이는 적막한 내리막길,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귀신에게 잡아먹히는 게 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www.israelimages.com

위대한 유대인 학자인 나흐마니데즈(Nachmanides)는 1267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그곳을 “사막으로 남겨진 쓸모 없는 땅, 유대는 갈릴리보다 궁핍해 보인다”고 묘사했습니다. 영국 요크 지방 대주교 에드윈 샌디스(Edwin Sandys)의 아들, 조지 샌디스(George Sandys)는 영국의 여행가이자 식민지 개척자요,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1610년 팔레스타인에 대해 “벌거벗은 땅, 광활하게 비어 있는 폐허 같은 나라”라고 보고했습니다. 또 다른 증인은 “그 땅에 나무는 천 그루도 채 안 되고, 그 땅을 경작할 수 있는 사람마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면, 이러한 증언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땅은 예언 대로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습니다.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이사야 41:18-20) 유대인들은 1800년대에 그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까지 복구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말라리아로 가득한 늪지의 물을 빼고,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사막에 관개 수로를 놓고, 대지를 경작하여, 이제 그곳은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고도 넘칠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에스겔이 한 때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스겔 20:6)이라 일컬었던 그 땅은 다시 한 번 예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Picture by Jewish Agency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귀환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이 흩어졌던 각 나라들로부터 그들의 옛적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될 날을 예언하였습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모스 9:14-15)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 내어 많은 민족이 보는 데에서 그들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라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에스겔 39:27-28)

오늘날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습니다. 그 중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민자로 이스라엘에 돌아온 자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민자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거의 2천 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고, 이들과 함께 전세계에는 약 14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약속, 그 분의 백성을 이스라엘 고토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그 약속을 지금도 성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예레미야 31:7)(개역한글)

성경에서 “야곱”은 이삭의 아들 야곱 혹은 유대인들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교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만방의 크리스천들에게 유대인들을 위하여 이같이 할 것을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ㆍ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기뻐하십시오.

ㆍ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들에게 외치십시오.

ㆍ “전파하며”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전하십시오.

ㆍ “찬양하며” –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ㆍ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소서” –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Bridges for Peace에는 이스라엘에 그리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많은 통로들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적극적인 행함으로 이스라엘 편에 서기를 바랍니다. BFP 홈페이지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시는 주님의 동역자가 되는 방법을 찾으시길 축복합니다.

레베카 J. 브리머(Rebecca J. Brimmer)

Bridges for Peace 국제 회장 겸 CEO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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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Brimmer, Rebecca J. Israel and the Church: God’s Road Map. Jerusalem: Bridges for Peac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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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man, David. They Loved the Torah: What Yeshua’s First Followers Thought
about the To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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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is, David. Can Israel Survive in a Hostile World? Green Forest, AR: New Leaf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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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ain, Mark. Innocents Abroad. 1869.
Wikipedia, online encyclopedia,  www.wikipedia.org
Wilson, Marvin. Our Father Abraham: Jewish Roots of the Christian Faith. Grand Rap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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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Scripture is taken from the New King James Version, unless otherwise no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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