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틈 사이에서 (In the Cleft of the Rock)

Photo: MNagata/bridgesforpeace

네게브 광야는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풍경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곳은 거친 석회암 절벽, 거대하고 둥근 바위, 돌발적인 홍수가 단단한 바닥을 둥글게 파낸 듯한 모양의 오래된 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릅답고도 잔혹한 곳입니다. 여름철에는 기온이 49도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언젠가 우리 일행은 어리석게도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온은 45도였습니다. 수분을 많이 섭취하지 않으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병 속의 물은 너무 뜨거워서 마치 방금 주전자로 끓인 물을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으로 괴로웠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강렬한 햇빛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우리는 재빨리 우뚝 솟은 절벽 아래 있는 암석의 시원한 그늘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제서야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저는 이사야가 말씀한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사야 32:2)에서 오는 회복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때 저는 성경이 왜 주님을 반석으로 묘사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의지하지 않고 걸어갈 때 우리의 시야는 흐릿하고 초점이 없으며 우리의 발걸음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고 그분의 이름을 신뢰하는 자를 보호하시며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편 91:14-15). 그날 저는 주님께서 나의 반석이 되심을 알았습니다.

반석에서 나온 물

타나크(Tanakh, 구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반석으로 묘사한 장면은 신명기 32장에 기록된 모세의 노래에 등장합니다. 시내 광야를 유리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견디기 힘든 열기와 갈증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Moses draws water from the Rock” by Francois Perreir
Photo: public domain

모세의 귀에는 물을 찾는 사람들과 가축들의 필사적인 외침과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백성들이 소리쳤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애굽기 17:2a, 3)

결국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출애굽기 17:6) 성경에는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석에서 생명수가 터져 나왔을 때 백성들이 느낀 놀라움과 기쁨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앞다투어 물을 마시고 몸을 적시며 그들이 구할 수 있는 모든 그릇에 물을 담았을 것입니다.

이 강력하고도 기적적인 경험을 통해 모세는 여호와께서 반석이심을 선포했습니다. 랍비 마이몬(Rabbi Maimon)은 반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쭈르(tzur)에는 분수, 근원, 샘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들의 공급자, 생명의 근원,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신다는 것을 친히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움직이는 돌

A “sailing” rock (Photo: Bill45/shutterstock.com)

성서 고고학 협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에서 발행한 기사에 따르면, 사막에는 ‘워킹 록(walking rock)’ 혹은 ‘세일링 록(sailing rock)’이라고 하는 신기한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암석들은 실제로 모래 사막의 바닥을 따라 저절로 미끄러져 움직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온 ‘신령한 반석’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고린도전서 10:4). 바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 인하여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묘사한 신령한 반석은 앞서 살펴본 사막의 특이한 자연 현상, 즉 저절로 움직이는 암석을 말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을까요?

 

존 바이런(John Byron)은 성서 고고학 평론(Biblical Archaeology Review)에 게재한 기고문 《바울, 예수 그리고 움직이는 돌(Paul, Jesus and the Rolling Stone》에서 물의 근원이 ‘움직인다’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 바울뿐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위(僞) 필로(Pseudo-Philo)의 《성서의 고대(Biblical Antiquities)》라고 알려진 1세기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분은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다. 그분은 40년 동안 그들을 위해 하늘에서 빵을 내리게 하고 바다에서 메추라기를 오게 하고 샘물이 그들을 따르게 하셨다.” (10.7)

바울과 《성서의 고대》 모두 반석에서 나온 물이 사막을 유리하던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에게 40년 동안 계속해서 물을 공급해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미드라쉬(Midrash, 유대교 성경 주석) 역시 반석/살아있는 샘(정체되지 않고 흐르는 물)이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예슈아)을 “반석”으로 칭합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모퉁잇돌”로 표현되었으며 사도 베드로는 그분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크리스천 학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움직이는 “반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혹독한 환경 속에서 긴 여정을 가는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귀한 물을 공급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반석 틈 사이에서

Photo: artmig/shutterstock.com

출애굽기 33장에는 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을 반석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분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합니다 (출애굽기 33:18). 그는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애굽기 33:21-2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두 가지 본질, 즉 권능과 긍휼이 합쳐진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반석 틈 사이에 숨기시고 그를 덮으심으로 그분의 임재의 권능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후 모세가 두 돌판을 새로 만들어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히 구별하여 부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대상의 본성 혹은 본질 때로는 운명까지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품의 진리와 이름다움과 영광을 선포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 경배함으로써 반응하였습니다(8절). 우리의 반응 역시 이와 동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알기 원하시고 우리가 그 지식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원하시며,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우리의 마음이 그분을 향한 경배와 경외로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한나의 반석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는 찬양과 감사의 기도이며, 이는 종종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소원이었던 아들을 주신 후에 그녀가 부른 노래 역시 모세의 노래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한나는 수 년 동안 눈물로 기도했지만 하늘의 문은 마치 닫힌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셨고 때가 되자 한나는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 구하였다,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었습니다.

한때 무자했던 여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녀는 이 반석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웠고 마침내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보였던 반응과 같이 한나 역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했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사무엘상 2:2)

나의 반석, 나의 요새

Waterfall at En Gedi (Photo: Noam Armonn/shutterstock.com)

시편 기자 역시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며 그분의 보호, 신뢰, 권능 그리고 불변하심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 메마르고 황량한 땅에서 다윗은 태양의 강한 열기에 대해 그리고 바위 그늘 아래 혹은 깊은 동굴 속 시원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반석, 보호자, 인도자가 되시고 “오른쪽에서 그늘”(시편 121:5)이 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타는 듯한 열기 속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엔게디(Ein Gedi) 골짜기 양쪽으로 우뚝 솟은 절벽 사이 오아시스에서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흐르는 샘물은 충분한 양의 식수를 공급해 주었고 식량으로 먹을 수 있는 야생 염소도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자신을 잡으려는 3천 명에 이르는 사울의 군대가 나타나면 재빨리 근처 동굴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던 곳 역시 엔게디에 있는 동굴 중 하나였습니다(사무엘상 24장). 이곳에서 그는 수 년 동안 사울 왕의 덫을 피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매우 위험한 때에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반석 위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왕의 보좌를 약속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완벽한 시간에 맞춰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뢰할 수 있는 분이셨을 뿐 아니라 다윗의 안위에도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 분이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2)

살아계신 반석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이사야 44:8)

“The Procession in the Streets of Jerusalem” by James Tissot (Photo: public doman)

누가복음 19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시는 장면을 봅니다. 많은 무리가 서서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고 제자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누가복음 19:38) 이 외침을 듣고 화가 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4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면 그것은 분명 초자연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현대 과학자들이 지난 세기에야 비로소 발견한 사실, 암석이 실제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 소리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낮은 주파수지만, 전세계에 있는 여러 표석 평야에는 망치로 두드렸을 때 맑은 금속성 소리를 내는 암석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특이한 현상을 가진 암석에 ‘살아있는 돌’이라는 용어를 붙였는데, 이는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묘사할 때 사용한 용어로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베드로전서 2:4)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권면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크리스천인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반석이심을 믿습니다. 이 반석은 교회가 만들어지고 굳건하게 세워지는 기초입니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베드로는 그 반석이 누구인지 알았고, 베드로 전서에서 그 반석이 예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을 닮아가야 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는 ‘살아있는 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닌 반석 위에 지은 영적인 집이 되어야 합니다(마태복음 7:24). 그리하여 폭풍 속에서도 굳게 서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성령 안에 거하며 그분과 연합하여 깨지지 않는 관계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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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축가와 설계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모든 건물의 설계와 건축에는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세우는 사람의 자부심이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 건물들이 쓸모 없어지고 철거되어 다른 것으로 대체되리라는 슬픈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세워진 가이사랴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는 한때 주목할 만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복원된 극장과 원형 경기장의 모습만이 옛적 위엄이 넘쳤던 도시의 모습을 일깨워 줍니다. 전성기에는 매우 웅장했을 이 건축물들은 훌륭한 건축가이자 설계자였던 헤롯 대왕의 창조적인 천재성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영원히 빛나는 훌륭한 유산을 남기고자 했던 헤롯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건축물들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이 도시의 항구는 바다 밑 4.5미터 아래 잠들어 있습니다.

헤롯이 남긴 유산은 지중해 연안의 부드럽고 스러지는 모래 위에 지어졌고 폭풍우와 파도와 지진으로 침식되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천재성처럼 변덕스러운 모래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웠고 이는 결코 영원하지 않은, 기한이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산이 오래도록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본질과 영원한 이름 위에 우리의 기초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기촛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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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28:16)

예루살렘(시온)은 유대 민족의 중심지이며 모리아산(성전산)은 영적인 허브입니다. 모든 것이 이곳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삭이 결박을 당하고 제물로 드려지던 곳이 모리아산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케다(Akedah)라고 불립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한 숫양이 수풀에 걸려 있었고, 그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22:14)

솔로몬은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세웠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눈길과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열왕기상 9:3). 그분의 임재가 이곳에 있는 석회암 기촛돌, 히브리어로 에벤 하셰티야(Even haShetiyah) 위에 영원히 머무를 것입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세상은 바로 이 기촛돌 위에 세워졌고 여기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세상이 시작되었고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셰티야(Shetiyah)’는 ‘마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유대인 현자들은 이 기촛돌 아래에 세상 모든 식수의 근원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석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재건된 이래로 성경은 이스라엘 국가에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 선언서에 “이스라엘의 반석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라는 문구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한 세속파 유대인이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그대로 포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데이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은 “우리 각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이스라엘의 반석’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반석’을 실제 이스라엘 땅,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반석, 쭈르 이스라엘(Tzur Yisra’el)’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쭈르(tzur)는 바위, 절벽 혹은 산을 뜻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 국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위에서 굳게 세워져야 했습니다. 권능의 하나님, 인내의 하나님,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 그분께서 적대적인 주변 국가들에 둘러싸여 이제 막 새롭게 탄생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해 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늘 변함없이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의 주권으로 보호하시고 그분의 손으로 덮으시고 반석 틈 사이에 숨기심으로, 참으로 그분의 신실하심을 이스라엘에 나타내고 계십니다.

캐시 디갠(Kathy DeGagne)
Bridges for Peace 출판팀 스탭

Bibliography

Barrett, Richard A. F. A Synopsis of Criticisms Upon Those Passages of the Old Testament: In which Modern Commentators Have Differed from the Authorized Version. Vol. 2, Issue 1. Longman, Brown, Green, and Longmans. 1847. Google Play e-book.

http://www.hebrew4christians.com/Blessings/Synagogue_Blessings/Jerusalem/jerusalem.html

https://www.blueletterbible.org/Comm/archives/guzik_david/studyguide_exd/exd_33.cfm

https://www.godvine.com/bible/1-corinthians/10-4

https://en.wikipedia.org/wiki/Ringing_rocks

Jason Jackson, “The Lord is My Rock,” Christian Courier, Access date Nov. 1, 2017, https://www.christiancourier.com/articles/1165-lord-is-my-rock-the

John Byron, “Biblical Views: Paul, Jesus and the Rolling Ston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Access date Nov. 1, 2017, https://members.bib-arch.org/biblical-archaeology-review/41/5/8

Megan Sauter, “Water from a Walking Rock,” Bible History Daily, Access date Nov. 1, 2017,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daily/biblical-topics/new-testament/water-from-a-walking-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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