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 (A History of Hurt)

내가 투숙하던 호텔의 프런트 직원이 나의 발표 원고 인쇄를 도와 주고 있었습니다. 그 원고는 기독교 반유대주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호텔 직원은 “기독교 반유대주의라니, 말도 안돼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그가 정확히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크리스천은 유대인에 대해 맞서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Daniel Ullric/ en.wikipedia.org

이 어둠의 유산을 따라가는 여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며,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크리스천
안전 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난해한 주제를 진정으로
깨닫기 원한다면 유대인의 생각과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들의
아픔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들이 겪고 있는 증오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유대인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본 적이 있습니까? 전문 용어가 생겨날 만큼 전 세계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용어가 바로 여러분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반유대주의”는 고대 상황에 대한 현대 용어입니다. 독일의 정치 운동가인 빌헬름 마르(Wilhelm Marr)가 1879년 유대인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을 펼치면서 이 추악한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이 증오에 대한 낙인은 수세기에 걸쳐 크리스천들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데니스 프레이저(Dennis Prager)와 랍비 조셉 텔루슈킨(Joseph Telushkin)의 공동저서 ‘왜 유대인인가?(Why the Jew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증오이다. 여타 대상들에 대한 증오도 항상 존재해 왔지만, 그 어떤 것도 반유대주의만큼 전세계적이고, 강력하며, 영속적이지는 않았다.” 이 저자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 또한 “왜 유대인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왜 유대인은 그토록 미움을 받는 것일까요? 왜 유대인은 그토록 쫓김을 당하는 것일까요? ‘기독교 반유대주의’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정체성에 있어 반유대주의가 이렇게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만큼 분노와 악의를 불러일으키는 유대인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한 동료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편애하신 거죠?” 이 질문 뒤에는 진실에 대한 무지와 현실에 대한 부정이 숨어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편애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현실은 유대인이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견뎌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특성

Carlo Riccardi/ Wikipedia.org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관련해서 “왜?”라는 질문은 아마도 반유대주의를 보편적인 증오로 일반화하려는 시도에 따른 현대 시대의 질문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이 증오가 유대교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그들만의 분명한 특성으로 인해, 이스라엘 안에서든 밖에서든 교육, 가정, 법령, 사회 체제에 있어 이방인에 비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이교도 신들을 무시하고, “완전한 세상”을 위해 매일 기도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은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하게 되었고, 이는 이방인에게 시기와 불안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 유대인은 이스라엘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며, 그가 “이방의 빛”(이사야 49장 6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진리를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1)유일신 – 우상 숭배가 만연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신이시며 누구도 비길 수 없는 분이십니다. (2)토라 (대개 창세기~신명기를 일컫지만,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음.)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분 앞에서 그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명령을 기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명령에 순종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3)이스라엘 – 나무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듯이 유대인도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이 필요합니다. 이 땅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역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 백성을 통해 전해지는 진리의 빛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빛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분개했습니다. 유대인은 모든 세대에 걸쳐 조사와 분석을 당하고 비평을 받으면서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 운동가인 올리브 슈라이너(Olive Schrein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것은 불편하고 매우 골치 아픈 일이다. 유대인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일들을 하면서 세상을 당황스럽게 해왔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높은 윤리 기준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세상에
전한 그 날 이후로 유대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낯선 존재가 되었다.” 반면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을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유대인을 싫어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틀림없이 누구도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훌륭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번은 내가 랍비와 함께 앉아, 크리스천들이 유대인의 특성을 알게 되면서 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이 당한 역경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유대인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잠시나마 홀로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대인에게 불가능한 단 한가지가 바로 홀로 남겨지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여러분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기원을 찾아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기원을 연구하다 보면 많은 문제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은 기꺼이 가장 깊은 뿌리까지 파내려 가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에 대적하여 일하고 있는 어둠의 영적 세력을 발견하게 되고, 이 영적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함을 알게 됩니다.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그리고 영적인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기독교 저자이자 교사인 데렉 프린스(Derek Prince)는, 1946년 히브리 대학 재학시절에 그를 지도했던 교수들 중 한 명이 유대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사회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교수는 유대인은 그들을 둘러싼 이방인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독특한 문화를 가진 이질적인 소수민족이므로, 유대국가가 존재한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에 프린스는 반유대주의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적인 것이며, 유대국가의 수립은 유대인을 증오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표적을 줌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교수와 학생 중 누가 옳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반시온주의가 새로운 반유대주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근원은 지옥에서부터 나온 사악한 증오라는 어두운 실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저주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유대인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 선택된 도구이기 때문에,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유대인을 대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언약, 히브리어로 ‘브리트 올람(b’rit olam)’을 통해 일하십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세기17:7~8)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 관계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유대인에 대한 사악하고 치명적인 증오를 허용하거나 부추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 반유대주의

Philip Maiwald/ en.wikipedia.org

프레이저(Prager)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기독교 창시자들은 유대인이 단순히 그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정통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날카로운 분석이긴 하지만, 이 논리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몇몇 교부들은 유대교가 사라져야만 기독교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억측했습니다. “둘 다”가 아닌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의 오류는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근간을 만들었고, 프레이저(Prager)는 이것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유대인에 대한 증오”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든 유대인이 기억하는 역사는 모든 크리스천이 잊어버린 역사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안다면, 크리스천은 반드시 이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시작은 매우 유대적이었습니다. 교회는 유대인 예슈아(예수님)로부터 유대인 사도들 그리고 샤브옷(Shavuot, 오순절)에 여러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인 유대인 군중들로 시작되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대부분의 유대적 교회에서 초기 “크리스천들”은 실제로 나사렛 분파의 유대인들이었으며,
이들은 히브리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교회와 시나고그 간에 일어난 초기 논쟁은 많은 유대인들이 따르는 이 새로운 “길”에 대해 유대주의 안에서 가족 간에 일어난 논쟁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첫 크리스천들은 유대적 신앙이 성장하고 확대됨에 따라 그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방인이 들어와 유대인의 뿌리에 접붙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과 함께 들어온 헬라적 사고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삶에 대한 히브리적 세계관을 서서히 파괴하였습니다.

헬라적 사고에 물들어 길을 잃어버린 교회의 지도자들로 인해 초기 교회는 그 뿌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고, 크리스천과 유대인 간의 분열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유대인 메시아를 요구하면서, 크리스천은 산으로 피하게 되었고 유대인을 떠나 따로 거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헬라적 지도자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게 되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재빨리 구약 성경을 단순한 비유로 취급했습니다. 일부 보잘 것없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유대인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통의 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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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수세기 동안, 헬라화 그리고 로마화되어 버린 기독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유대인에게
계속해서 고통과 모욕을 주었습니다. 작가 마빈 윌슨(Marvin Wilson)는 “누구라도 교회가 유대인의
고통에 기여하지 않은 때를 단 한 세기라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많은
교회 지도자들의 관점을 통해,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2세기: 이냐시오(Ignatius) 주교: 누구든지 유월절 축제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죽인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교부: 교회가 유대인을 대체했기 때문에, 유대인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리옹(Lyon)의 이레나이우스(Irenaeus) 주교: 유대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겼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클레멘트(Clement) 교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인도하기 위해 그리 스 철학을 주셨지, 구약 성경을 주신 것이 아니다.

3세기: 오리게네스(Origen) 교부: 구약 성경은 비유적인 해석으로 충분하다. 터툴리안(Tertullian) 교부: 모든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유죄이다. 카르타고(Carthage)의 키프리아누스(Cyprian) 주교: 모든 유대인은 반드시 그들의 영토를 떠나거나 죽어야 한다. 에우세비오(Eusebius) 교황: 이제 구약의 언약들은 교회가 대신하며, 구약의 저주들은 유대인에게 남겨졌다.

4세기: 예로니모(Jerome) 교부: 유대인은 “유다의 형상을 지닌 뱀(사탄)”이므로,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주교: 유대인은 “증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을 억압함으로써 기독교의 유효성을 확증하는 것이며, 크리스천에게는 그들을 꺾을 권리가 주어졌다. 안디옥(Antioch)의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 주교: 하나님께서는 항상 유대인을 미워하신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의무”이다. “나는 시나고그를 싫어하며, 같은 이유로 유대인을 싫어한다 … 유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으며 신을 죽인(deicide) 죄로 인해 속죄가 불가능하다.” 여기서 “deicide”, 하나님을 죽인다는 뜻의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모든 유대인이 항상 유죄라고 가르쳤습니다.

더 많은 상처의 길

이 후 수 세기 동안, 소위 “교회의 승리”는 유대인에게 그들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유대인을 지배하기 위한 더 많은 방법들을 모색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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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유대인과 함께 식사하거나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유대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일한 참 신이라는 영원한 선언, 쉐마(Shema)로 기도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쉐마(Shema)는 예슈아께서 마가복음 12장 29절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하시며, 신명기 6장 4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부활절 전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교회는 부활절이 진정한 유월절의 축제이자, 첫 열매라는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한 무지한 유럽 교회는 부활절 그리스도 수난극을 하면서 그 지역 유대인을 향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죽인 죄목으로 집에서 끌려 나와 구타와 죽음을 당했습니다.

1096부터 1300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크리스천 군인들은 불타듯이 선명한 붉은 십자가를 앞세우며, 7회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회교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거룩한 땅을 탈환하기 위해 행진했습니다. 행군 중에 그들은 유대인을 살해하고 심지어 회교도와 함께 크리스천까지 살해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당시 라인지방(Rhineland *역주: 독일의 라인 강 서쪽 지방)에서 5천 명의 유대인이 살해당했고, 프랑스 유대인 공동체 전체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의 회교도를 모두 살해한 뒤, 유대인들을 모아 시나고그에 가두고 문에 못을 박은 후 불을 질렀습니다. 군인들이 “그리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안에서는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자비를 구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독특한 배지를 달고 모욕적인 의복을 입도록 강요했습니다. 나치가 등장하기 이미 오래 전에 회교도와 크리스천은 유대인에게 노란색 표식을 부착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흑사병, 성체 모독, 피의 비방에 대한 유대인 음모론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은 토라에 따른 식생활과 높은 위생 수준으로 전염병에 걸리는 확률이 현저히 낮았는데, 이를 두고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주술을 부린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이 성찬식에 사용하는 얇고 납작한 빵인 성체를 몰래 가져가 핀으로 찔러 그리스도께 고통을 주며, 세대를 이어 계속해서 예슈아를 죽이고 있다는 루머가 퍼졌습니다. 피의 비방(the blood libel *역주: 중세시대 반유대주의에서 유래한 용어로, 유대인이 종교의식에 쓰기 위한 피를 뽑기 위해 아이를 유괴, 살해한다는 미신이 기독교인 사이에 퍼지면서 유대인이 박해 받고 처형 당함.) 누명은 유대인이 크리스천 아이들을 납치해서 이들의 피로 유월절 마짜(matzah, 무교병)를 만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대부분의 기독교 유럽국가들은 유대인을 추방할 명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상징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추방당하고 방랑하는 것을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십시오. 1012년 독일에서, 1182년 프랑스에서, 1290년 영국에서, 1492년 스페인에서, 1495년 리투아니아에서, 1496년 포르투갈에서, 1550년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헝가리,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모라비아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동방 정교회가 성장하면서, 정착지 경계(Pale of Settlement *역주: 1791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의 유대인 특별 구역)에서 공식적으로 유대인을 박해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백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공개 감금되었고, 학살을 당하는 등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대학살을 기억해 봅시다.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면, 1298년 독일에서, 1391년 스페인에서, 1648년

우크라이나에서, 1655년 폴란드에서, 1906년 러시아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났습니다. 1492년 페르난도(Ferdinand) 국왕과 이사벨(Isabella) 왕비는 탐험을 위해 콜럼버스(Columbus)를 임명하면서 십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추방했고 그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고문과 살해를 당했습니다. 상설 재판소인
스페인 교회에서는 이교도를 근절시키기 위한 종교재판이 열렸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 세례를 받을 것인지 추방을 당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기독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마라노(Marrano *역주: 중세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기독교로 개종 당한 유대인을 지칭함.) 또는 콘베르소(Converso *역주: 스페인어로 개종자라는 뜻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회교도나 유대인을 지칭함.)로 분류되었습니다. 여전히 비밀리에 유대교를 믿었던 많은 이들에게는 잔인한 조사가 행해졌고 사형선고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변화의 기회

Public Domain/ Wikipedia.org

초기 종교 개혁 당시(1500년~1600년) 교회가 성경적 권위와 유대적 뿌리로 돌아가면서 유대인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종교 개혁의 영적 지도자이자 용감한 신학자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글을 쓰면서 예슈아와 초대 교회의 유대적 정체성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비유라고 고집했습니다. 타락한 기독교를 바로 세우는 은총을 확실히 얻으면서, 루터는 이 은총으로 유대인의 기독교 개종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도리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유대인과 거짓말(On the Jew and Their Lies)”이라는 저서를 통해 유대인의 시나고그를 불태우고 집을 파괴하는 일, 유대인의 기도책과 탈무드(유대 전통 및 구약 성경에 대한 랍비들의 해설서)를 빼앗는 일, 랍비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일, 유대인의 여행을 금하는 일, 유대인으로 하여금 가장 노예스러운 노동을 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옹호했습니다. 이후 종교 개혁가들이 많은 것을 바꾸긴 했지만 대체 신학과 유대 민족을 향한 성경적 약속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는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으로 남아있으려는 강한 유대적 성향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졌고, 또 다른 종교 개혁가 존 칼뱅(John Calvin)은 “그들의 더럽고 고집스러운 완고함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박해받아 마땅하며, 어떤 연민도 없이 불행 가운데 죽어야 마땅하다.”라고 쏟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크리스천과 유대인 간의 관계 회복에 대한 모든 희망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단절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극도의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으로까지 커져갔습니다.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3분의 2, 전세계 유대인의 3분의 1이 몰살되었습니다. 이것은 근대의 역사입니다. 이런 현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들까요? 여러분 역시 이렇게 쫓기게 된다면 방어적이 되지 않을까요? 홀로코스트는 기독교의 쓴 열매였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나치즘은 기독교 운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유대인은 다음과 같이 냉담하게 말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둘러싼 주변 일대에는 교회 첨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경비병의 어머니들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비통하게도, 히틀러(Hitler)의 “최종적 해결(final solution *역주: 집단 학살.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계획적 말살)”은 수세기에 걸친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바탕 위에 세워졌습니다. 윌슨(Wilson)은 “아마도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유대적 뿌리를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저술가 리처드 부커(Richard Booker)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기독교의 반유대주의 정책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유대인 문제에 대해 ‘최종적 해결(집단 학살)’을 실행할 수 있도록 신학적인 당위성을 부여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철저히 반유대주의였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 몰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권위자 라울 힐버그(Raul Hillberg)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사실상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당신은 우리들 안에서 유대인으로 살 권리가 없다.’ 세족적인 지배층들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들 안에서 살 권리가 없다.’ 나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공포했습니다. ‘당신은 살 권리가 없다.’” 천 년 동안 교회는 유대 민족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선택권만 찾아낸 것 같습니다. (1)유대인을 개종시킴으로써 기독교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 (2)유대인을 추방함으로써 편안한 문화를 영위하는 것. (3)유대인을 몰살하여 궁극적인 증오를 만족시키는 것.

하나님의 최종적 해결

여기 또 다른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을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단순하면서도 능력 있는 이 성경적인 선택권에 대해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오래 전에 가르쳤습니다.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1:31)

우리는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기원을 파헤쳐 내려오면서 영적인 뿌리에 다다랐습니다.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프린스(Prince)는 언젠가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교회에서 설교하던 중 다음과 같이 설명했는데,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메시아’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반유대주의는 처음부터 하나의 근원, 곧 사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과, 사탄은 세상을 다스릴 유일하신 분인 메시아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예비된 민족을 통해 나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동요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날 유대 민족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하실 것을 기다립니다. 크리스천과 유대인 모두, 사탄에 대한 최종적 해결을 가지고 계신 분은 만유의 왕임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완전히 멸하시고 악에 대해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함께 많은 일들을 해 나가야 합니다.

빌 아담스(Bill Adams) 목사

Bridges for Peace 미국지부 부대표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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